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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종말
4361자 / 수칙서 괴담 기반 OC / 코즈믹 호러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에드릭 맥코이는 해가 뜨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맥코이의 오피스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스탠드 불을 켜자 책상 위에 놓인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11월 5일, 오전 5시를 가리키는 금속 재질의 디지털 탁상시계. 마시다 만 커피가 담긴 머그잔. 반려된 예산 기획 문서 더미. 은빛 볼펜 하나. 그리고, 어떤 영화의 비디오 케이스.
비디오 케이스에는 「종말의 날」이라는 불온한 문구가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그뿐이었다. 줄거리는 적혀있지 않았으며, 사진 한 장조차 붙어있지 않았다. 싸구려 복제본인 듯했다. 맥코이는 이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모니터 화면이 켜져 있었다.
데스크톱 옆에는 구식 비디오 플레이어가 놓여 있었고, ‘PAUSE’라고 적힌 글씨가 은은하게 깜박였다. 모니터에 떠올라 있었던 화면은, 「종말의 날」의 한 장면이었다. 화면을 두 눈에 담는 순간, 맥코이는 그 영상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빈손은 어느새 멋대로 ‘PLAY’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을 예견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교묘하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편집된 영상은 종말론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11월 5일에 해가 뜨면 멸망을 맞이할 것이며,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거라는 진부한 이야기들. 그리고 빠르게 점멸하며 전환되는 프레임. 끔찍한 사건들. 누군가의 비명. 뉴스 속보와 긴급 방송. 집단 자살을 준비하는 전 인류. 도축과 해체. 융합. 파쇄. 그릇된 공유. 구토. 숭배. 추락. 환희와 절망. …일출.
그 모든 장면들을, 에드릭 맥코이는 무심코 맨눈으로 봐 버리고 만 것이다.

그제야 안경을 썼다. 그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구설수로 떠오르는 온갖 종말론은 전부 허풍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맥코이 본인이 크리처 진압 업무를 통해 밝혀낸 바 있었다. 일순간에 그런 식으로 세상이 완전히 붕괴한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불가했다.
그러니 해가 뜬다고 세계가 멸망하는 일 따위가 일어날 리도 없었다. 자신은 변칙 개체의 영향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본부에 연락해서 비디오의 정보를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동일한 영상물이 복제되어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한시라도 빨리 최대 인원을 투입하여 「종말의 날」 비디오를 전부 회수하라고 전달해야만 했다.
그러나 몸은 이성의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 수 시간 내로 자신이 그런 말로를 맞이하게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은 맥코이의 이성을 배반하고 사고회로 한편을 장악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끝이 떨렸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고 싶었다. 멍해진 두뇌는 권총의 위치를 천천히 기억해냈다. 내 자리, 책상 밑 두 번째 서랍. 다급하게 손잡이를 쥐고 열어젖히려 했지만 찰카닥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서랍은 잠겨 있었다. 열쇠가 있는 곳은……, 맥코이는 되짚었다. 책상 위나 자신의 호주머니 속이 아니라면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맥코이는 땀 쥔 손으로 제 호주머니를 뒤집었다. 지갑밖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책상이었다. 조급하게 뻗은 양손으로 책상 위를 훑다 보면, 단정하게 놓여 있던 잡동사니들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주먹 쥔 손을 책상에 내리쳤다. 제길, 제기랄, 이런……, 빌어먹을! 손등에 멍이 들 때까지 그 짓을 반복하고 있자면, 등 뒤에서 끼이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리면, 열린 자리에 그의 파트너가 서 있었다.

“…코이군.”

라가이 하세야의 그 고저 없는 푸른 눈동자나,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미소는 언제나와 같이 가증스러웠다, 라고. 맥코이는 생각하며 하세야를 응시했다. 그 사이에 침묵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하세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혼자서 뭐 해? 안 잘 거면 나랑 놀자.”
“…그럴 때가 아니야.”

이마에 흐르던 식은땀을 닦은 맥코이가 금방 시선을 떼자, 하세야의 입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흔들었다. 짤랑거리는 금속성의 소음과 함께, 스탠드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형체가 맥코이의 눈에 들어왔다. …열쇠였다.

“그거 이리 내!”

맥코이의 목소리가 빈 건물을 울렸다. 하세야에게로 돌진해서 팔을 뻗었다. 시도는 금방 저지당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쇠를 뺏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살을 향한 몸부림은 어딘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몸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수 근력으로 맞붙어봤자 하세야를 절대 이길 수 없었던데다가, 평정심을 잃은 지금의 맥코이에게는 더욱 열세였다. 맥코이를 꽉 쥐고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다가, 일부러 힘을 빼서 그를 놓아주었다가. 오피스 바닥에 붉은 피가 몇 방울 떨어졌다. 양껏 맥코이를 가지고 놀던 하세야는 맥코이의 팔을 가볍게 쥐고 비틀었다. 큭, 으윽……. 고통을 참는 듯한 신음성이 흘러나오면 하세야가 달래듯이 말했다.

“이거, 코이군이 나한테 줬어.”
“…그런 기억 없어.”

하세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맥코이는 코를 얻어맞는 순간 하세야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에게서 감정을 읽어내어 해석하려는 수십 차례의 시도는 전부 허사로 돌아갔으나……,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종류의 격정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다는 점만은 맥코이로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라가이 하세야는, 에드릭 맥코이를 이렇게 쥐락펴락할 때마다 그런 얼굴을 하고는 했다.
하세야의 주먹이 맥코이의 명치 근처를 가격하고 나서야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코와 입가가 자신의 피로 엉망이 된 채로, 맥코이는 오피스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 시선은, 시한부 환자가 심전도 기계를 확인하듯 창틀 쪽으로 향했다. 어둠뿐이던 창문으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곧 해가 뜰 거야. 우린 모두 끝났어.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리 되뇌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코이군, 오늘따라 더 건방지네.”

하세야는 그런 맥코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종말, 말이지……. 중얼거리며 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죽고 아무도 안 남게 되는 아포칼립스 영화를 보면 말이야.”

전에 같이 본 적 있잖아. 그렇지? 덧붙인 하세야는 천천히 맥코이의 곁에 누웠다. 맥코이에게는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맨눈으로 목도해야만 했던, 비디오 영화 속의 불가해한 장면들이 뇌내에서 번쩍거렸다.
맥코이의 시선은 창문을 떠날 줄을 몰랐다.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끔찍하게 두려우면서도, 다가오는 종말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하세야에게 얻어맞은 부위의 욱신거리는 고통마저도,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곁에 누운 하세야는 맥코이의 시선을 좇았다. 그의 미소에 장난기가 맴돌았다.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듯이 숨을 내쉬더니, 맥코이의 어깨를 움켜쥐고 말했다.

“각별한 사이에는, 멸망이 찾아오기 직전에 이렇—게 곁에 누워서…….”

으윽, 악, ……아아아! 강제로 자신을 마주 보고 눕도록 관절을 비틀자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맥코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세야는 키득키득 웃으며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밀어, 피가 맺힌 맥코이의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키스는 길지 않았다. 창밖으로 새 소리가 들려올 때쯤에, 하세야는 고개를 빼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더라.”
“…….”
“어때, 코이군? …11월 5일의 아침이야.”

맥코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한 입맞춤 때문인지, 어느새 눈부실 정도로 두 사람이 누운 오피스 바닥을 내리쬐고 있는 아침 햇살 때문인지는 자신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이 기분이 나빴다.

“그럼……, 지금 이게 ‘완전히 망가져 버린 코이군’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애초에 네가 두드려 팼잖아, 내 얼굴을. 맥코이가 속으로 삼킨 문장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세야는 그저 소리 내 웃기만 했다. 좋네, 좋아. 코이군, 오늘은 아침부터 정말 재밌었어……. 가증스러운 말들을 늘어놓으며 하세야는 맥코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보고하러 가야 해.”
“에이……. 해도 떴는데 좀 더 놀자, 코이군.”

맥코이는 하세야를 뿌리치고 싶었지만, 넝마가 된 관절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하세야에게 이끌려 오피스에서 끌려나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새 직원 몇 명이 출근해 있었다. 맥코이의 몰골을 본 직원들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눈으로 두 사람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건물 복도에는 햇빛, 또 햇빛, 온통 햇빛뿐이었다. 맥코이는 문득, 아까까지 자신이 무엇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몸뚱어리로 네 녀석을 ‘놀아 주고’ 나면, 당분간은 또 병원 신세겠군……. 보고는 또 언제 올리고……, 맥코이는 한탄하듯 중얼거리고는, 밀쳐 버리려던 하세야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라가이 하세야의 말대로, 11월 5일. 여느 때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