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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추게 하지 말아줘
10632자 / 현대 일본(아이돌리쉬 세븐 2차 - 유키x모모) / 코즈믹 호러

딩동.
…….
딩동.

1월 5일의 저녁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유키의 집 초인종을 누른 모모는 머리와 목도리에 쌓인 눈을 털었다. 달라붙은 눈이 체온에 녹아 축축해진 손끝을 강박적으로 매만졌다. 모모는 조금, 아니 많이, 초조했다. 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이만큼이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느껴진 건, Re:vale의 복귀를 소망하며 무작정 그의 집에 찾아갔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응답조차 없었다. 제 입에서 새어 나온 김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묵묵히 기다리던 모모는 현관문에 귀를 붙였다. 맨살을 찌르듯 엄습하는, 철로 된 문에 내려앉아 있던 한겨울의 냉기. 그리고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결한 침묵. 무無가 귓바퀴를 아득하게 메우자 모모는 무심코 코를 훌쩍였다. 흥, 하고, 잠시나마 귓가를 울리던 소음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고요만이 남았다.
모모는 도어락에 손을 얹고 잠시 망설였다. …비밀번호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몇 년을 보아 온 사이인데. 하지만 유키는, 어쩌면 지금도 곡을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유키를 배려하지 않고 그의 공간에 침입해도 괜찮을까. 평소라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고민이 머리에 스며들면, 모모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노을을 등지고 선 자신의 그림자가 현관문에 어둡게 드리웠다.
마음은 금방 기울었다. 지금은 걱정이 제일 컸다. 도어락을 덜컥 열고 삑, 삑, ……삑, 삑……, 숫자를 누르는 모모의 손이 떨렸다. 입에는 아무것도 대지도 않고 몇 날 밤낮을 몰두하다가 쓰러져 버린 거면 어떡하지. 유키를 시기한 안티 팬이 집까지 찾아와서 그를 해쳤으면 어떡하지. 혹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어떡하지. 다른 쪽 손이 호주머니로 파고들어 휴대전화를 쥐었다. 여차하면 신고를 할 셈이었다.
온갖 망상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 짧고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모모의 손은 본능을 따라 무심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힌 자리에는,
“유, 유키…?”
유키가 있었다.

모모는 눈을 깜박였다. 첫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묵직하게 짓눌러서 지워 버리는 커다란 위화감이, 곧 뇌내에 자리 잡았다. 유키는 거실 한가운데에 정자세로 서 있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하고도 단정한 모습으로, 자신과 마주 본 채로, 아주 반듯하게. 모모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내부를 살폈을 때, 유키가 큰 움직임을 보인 듯한 기색은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현관문을 향해 서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아까 초인종 소리, 못 들은 건가? 아니……, 들어 놓고 가만히 있었던 건가? 내가 문을 열 때까지……? 긴장한 탓에 축축하던 목덜미가 이제는 서늘하도록 말라 가고 있었다. 모모는 부러 헛기침을 했다. 현관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유키!”
그래, 모모. 걱정시켜서 미안. 모모는 내심 그런 대답을 기대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마음이 담긴, 유키만의 감정을 실은 쑥스러운 인사를. 그러면 지금까지 자신이 느낀 위화감은 환상으로 치부하고 넘겨 버릴 수 있을 터였다. 신년에는 으레 서먹한 지인들로부터도 안부 문자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고는 했고, 매번 그들과의 사소한 기억을 떠올려내어 장문의 답장을 보내는 일도 수십 수백 건이 겹치니 모모는 꽤나 피로감을 느껴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든 평소보다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었고, 일주일 정도 연락이 닿지 않던 파트너를 걱정하는 마음도 다소 과해졌던 걸지도……,
…그러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고요 속에는 그저 미소, 노을에 착색 당한 세피아 빛 미소만이 있었다. 언제나 봐 왔던 유키의 멀끔한 미소였지만 어딘가……,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것도 피로감의 연장선인가. 모모는 침을 삼켰다. 불가해한 침묵이 이 이상 길어지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모는 호주머니 속에 찔러넣고 있던 손을 꺼냈다. 마침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손끝이 액정에 닿자 화면이 켜졌다. 잠금화면 상단에서 전자시계가 깜박였다.
“그거 알아? 우리 연락 안 한 지 일주일 하고도……, 17시간……, 49분, …앗, 말하는 사이에 벌써 50분!”
그럭저럭 일상적인 어조로 말을 건네는 데에 성공했다. 유키에게는 항상 이렇게 말을 걸었었지. 오래되어 감조차 잃을 뻔한 그와의 대화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재빨리 다시 휴대전화를 도로 집어넣은 모모는 유키에게 바짝 붙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튼,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아~? 얼굴 잊어버린다구. 정말~ 래빗챗 정도는 확인하란 말이야! 모모,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유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리만치 절제된 반응이었다.
그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유키의 어깨를 두드리던 모모의 손길이 점차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멈추었다. 모모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동시에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선을 얽기가 두려웠다. 그의 잿빛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가는, 지금의 이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아버릴 것만 같아서…….
“바, 밥은……,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있었으려나 모르겠네…?”
대신 모모는 우회로를 골랐다. 그가 입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까 대답 좀 해줘. 모모가 목구멍 뒤쪽으로 간신히 삼켜낸 간절한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이, 유키의 고개가 제 옆에 붙은 모모에게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모모는 제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바닥만 보고 있어도 느껴졌다. 조금 위쪽에서 저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집요한 시선이 거기에 있었다.
한참 뒤에야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모모.”
모모는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점심에는 버섯미소시루와 계란말이를 해 먹었어.”
“…그, 그, 그렇구나.”
모모의 시선이 슬금슬금 올라갔다. 그건 유키의 목소리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완벽했다.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음성이나, 자동 응답 기계의 대답처럼 무미건조한 내용만 무시할 수 있다면.
“네가 여기에 방문한 이유는 뭐야?”
유키의 질문이 이어졌다. …역시 조금 이상하다. 모모의 시선이 유키에게로 향하려다 그 사이 언저리의 허공에서 방황했다.
문자를 미처 확인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불쑥 찾아온 모모의 방문 의도를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어투가, 묘하게……. 교과서에 실린 회화 같다고 해야 할까. 수년간 파트너로 지내왔으며, 그 이전부터 팬으로서 유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당당하게 정의할 수 있는 모모로서는 신경이 쓰였다.
“그야, 일주일 넘도록 만나긴커녕 연락도 안 됐는걸.”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친 모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후퇴가 일종의 방어 기제라는 사실을 유키가 알아차리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모는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듯이 장난스럽게 손바닥을 비볐다.
“정말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쩐지 유키가 엄청엄청 걱정이 돼서 멋대로 쳐들어와 버렸어! 미안~ 용서해 줘!”
“괜찮아.”
“…그, 그보다 말이야. 곡은 어떻게 됐어? 물어봐도 돼?”
“곡?”
꾸역꾸역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던 모모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건 유키가 아니야. 도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를 본 순간부터 뇌수 한편에 자리 잡아 꿈틀거리던 문장이 스멀스멀 부풀어 올라 대뇌를 압박했다.
“어라, 유키~ 잠을 너무 설친 거 아니야? 피곤하지~? 우리 곡 말이야!”
텐션을 끌어올린 자신의 목소리에서 동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하며 휴대전화를 다시 꺼냈다. 모모는 그것이 자신이 아는 유키가 맞다고 믿고 싶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거나 그가 정신이 없을 뿐이라고,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넘겨 버리고 싶었다. 잠을 설쳤다기에는 너무도 깔끔하고 개운한—정확히는 ‘아무 부정적인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에 가까웠다—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유키에게, 얼마 전 서로 주고받은 래빗챗을 내밀어 보여주는 것도 전부 그 이유에서였다.

「응, 간만에 괜찮은 곡이 나올 것 같아」 22:56
「정말 미안」 22:57
「일주일 정도만 기다려줘, 금방 끝내서 가지고 갈게」 22:57

읽음 22:58 「아니야~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 • ᴗ - ) ✧」
읽음 22:58 「유키의 곡은 세계 제일이니까!」

“작곡하느라 바빴던 거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늦지 않았어. 정답은 전부 여기 적혀 있잖아. ‘유키답게’ 대답해준다면, 지금까지의 망상은 전부 잊어버릴게. 필사적인 문장들을 속으로 되뇌며, 모모는 겨우 고개를 들어 유키와 눈을 맞추었다.
유키의 눈동자가 천천히, 모모가 내민 화면을 읽어 내려갔다. 그가 채팅 내용을 곱씹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게만 느껴졌다. 통신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을 때가 생각나는 어색한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키가 입을 열었다.
“…아, 우리 곡.”
“응.”
“그건 이제 더는 걱정 안 해도 돼.”
모모를 안심시키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곡이 완성되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만들던 곡을 폐기했다는 뜻? 그것도 아니라면……. 의중을 짚어내려 애를 쓰다 보면 낯은 자연히 멍해졌다.
유키는 그런 모모에게 손을 뻗었다. 흰 손이 모모의 목둘레에 갑갑하게 둘려 있는 목도리를 풀어나갔다. 그 손길만큼은, 거짓이나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진짜 유키처럼 다정하게만 느껴졌다. 모모는 그런 유키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제 네 얘기도 들려줄래? …모모.”
그러므로 모모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화장실 좀 써도 돼?”
“그럼, 모모. 다녀와.”
도망치듯 화장실에 들어온 모모는 조용히 문을 잠그고 휴대전화를 켰다. 해는 진작에 졌고, 어느덧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모모는 주소록에서 매니저의 번호를 찾았다. Re:vale의 매니저, 오카자키 린토.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유키에 관해 묻지 않은 이 시점에서는……, 그와 친분이 있고, 답장도 빠르고, 자신의 말을 바깥으로 흘리지 않을 법한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연락하지 않았어도, 매니저라면 신년 일정 조정을 위해서라도 대화를 나눴을 것이 분명했다.
모모는 메시지 창을 띄웠다. 그리고 다급하게 텍스트를 적었다.

「오카링, 유키 못 봤어?」 00:07
「최근에, 그러니까……. 새해 이후로!」 00:08

문자 전송 버튼을 누른 모모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움켜쥔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수도꼭지를 열었다. 투명한 물줄기가 쏟아져나왔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자, 지금껏 기이하게 붕 떠 있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수도꼭지를 힘주어 잠근 모모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조금은 지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분홍색 눈동자는 분명히 ‘진짜’ 자신의 것이었다. 그쯤은 눈을 보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모모는 유키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첫 순간 마주했던 그의 잿빛 눈동자를, 모모는 똑바로 응시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자세히 보았더라면 알 수 있었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밝혀지는 것 자체를, 두려운 마음에 본능적으로 피해 버렸던 것일지도 몰랐다.
위화감에도 역치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에게서 역치 이상의 낯섦을 느낀 것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선 첫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정점을 찍은 위화감은,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낮아져 갔다. 유키, 괜찮은 거 맞지? 평소라면 그렇게 얘기 안 하잖아.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면 유키는 자신의 언어를 곱씹고는 좀 더 편안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서너 번 정도 반복하고 나니, 이 유키는 평소의 유키와 거의 다르지 않은 화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유키, 이렇게 이야기했던가. 역치를 건드리지 않는, 아주 사소한 위화감만이 기저에 끊임없이 일렁였다. 모모는 안도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오싹거렸다.
모모의 검증은 계속되었다.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유키에게도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 달라고 재촉했다. 돌아오는 말은 뻔하면서도 유키다웠다. 작곡, 작곡, 가끔은 요리, 산책, 안 풀리는 날에는 온종일 잠을 자기도 하다가, 일어나서는 또 작곡. 만들던 곡이라며 들려준 음원은 분명히 유키의 스타일이었고, 꽤나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났다. …결정적으로, 모모는 그 곡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유키밖에는 만들 수 없는 멜로디였다.
곡은 미완성이었고, 가사가 없었다. 뼈대는 거의 다 마무리되었으니까, 앞으로는 내가 채워 나가기만 하면 금방 완성될 거야. 유키의 말에 굳이 공격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모모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잘 됐으면 좋겠다”밖에는 없었다.
젖은 얼굴을 수건에 문질러 닦은 모모는 래빗챗을 켰다. 유키와 나누었던 문자는, 이제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며칠이 지나서 꽤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스크롤 몇 번을 내린 뒤에야 유키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던 대화 내력을, 모모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다시 확인했다.


— 12.28 (9일 전) —

「미안, 모모. 신년 약속은 무르자」 22:47
「당분간은 새 곡을 만드는 데에 집중할까 해」 22:47

읽음 22:47 「헉, 새해 첫날을 함께하는 초—중요한 약속인데 퇴짜 통보!?」
읽음 22:47 「완전 서운해!! 사랑이 식었어!!」
읽음 22:49 「…막이래(な~んちゃって)! 괜찮아, 달링♡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나 봐?」

「응, 간만에 괜찮은 곡이 나올 것 같아」 22:56
「정말 미안」 22:57
「일주일 정도만 기다려줘, 금방 끝내서 가지고 갈게」 22:57

읽음 22:58 「아니야~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 • ᴗ - ) ✧」
읽음 22:58 「유키의 곡은 세계 제일이니까!」
읽음 22:58 「잘 자, 유키~!! 내년에 보자!」

「응」 23:01
「너도 잘 자, 모모」 23:01

— 1.1 (4일 전) —

00:00 「새해 복 많이 받아, 유키 ( ˃ᴗ˂ ) 곡 만드느라 힘들 텐데 연락해서 미안~ 꼭 안부 인사하고 싶었어! 얼마 전 《BLACK or WHITE》에서의 일은 분하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 나도 조~금 슬펐었지만 이제 괜찮아! 유키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Re:vale의 스테이지는 항상 최고니까!! 나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게! 어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1.5 (어제) —

14:04 「유키, 혹시 아직도 작업 중?」
17:19 「지금 보러 갈게」

모모는 ‘읽음’ 표시가 없는, 자신이 보낸 새해 메시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화장실 문 뒤편에 있을 지금의 유키를 믿고 싶었다. 눈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서도 지금까지 유키를 불안한 시선으로 관찰한 것도, 매니저에게 다급하게 문자를 보낸 것도 전부 그래서였다. 이 기이한 유키를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진짜 유키이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유키는 어떻게 되는 건데.
때마침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오카링’으로부터의 문자. 매니저였다.

「유키 군과는 연락이 안 된 지 일주일도 넘었는데…….」 00:11

일주일.
숨이 막혀 왔다. 호흡하는 방법마저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들이마신 숨이 허파에 가득 차서, 주변 시야가 점점 하얗게 떠 가는 동안에도 모모는 생각할 뿐이었다. …그럴 수가 있나?

「모모 군」 00:12
「유키 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00:12

그럴 수가 있나.
문득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모?”
그럴 수 있다.
“아직이야?”
유키가,
일주일 동안,
휴대전화를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고,
작곡에 몰두했다고 가정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막혀 있던 숨이 단번에 내쉬어졌다.
모모는 입을 열었다.
“아냐, 아냐! 금방 나갈게.”

「아니야, 걱정하지 마! 오카링」 00:12
「이제 찾았어」 00:12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모모는 화장실 문 잠금을 풀었다.


. . .



「유키 씨 말씀이신가요? 글쎄요…….」 07:10
「그 사람이랑은 최근에 연락한 적 없어」 07:52
「그러고 보면, 근 며칠간은 회사에서 못 봤네요」 08:37
「모모가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를걸. 바쁜 시기라면 내가 연락해도 좀처럼 받지 않으니까」 08:54

이곳저곳에 돌린 문자의 답장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모모는 빈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산책했다며. SNS도 기를 쓰고 뒤져 봤어. 연말 연초에는 어디에나 사람들이 가득하잖아. 그런데 그 흔한 목격담 하나 없어. 지인들도 짚이는 게 전혀 없대. 장은 안 봐? 일주일 동안 굶어가면서 곡만 쓴 것도 아니잖아……. 혼자 중얼거려봤자 답이 들려올 리는 없었다.
응, 고마워. 각자에게 답장을 보낸 모모는 휴대전화를 끄고는 옷걸이에 걸어 둔 겉옷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연습실 앞에서 유키와 만나기로 했다. 오늘도 무대 연습을 할 참이었다.

재회한 다음 날부터, 유키에게 노래와 춤을 보여달라고 몇 번이고 졸랐었다. 오래간만의 연습이니, 안무와 화음을 함께 맞춰 보지 않겠느냐고. 파트너 사이에 마땅히 할 만한 제안이었고, 유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유키는 모모의 옆에 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원, 투, 쓰리. 모모가 읊조리고 나면 음악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음악에 맞추어 팔을 뻗고, 목소리를 냈다. 처음으로 손이 맞닿던 장면에서는 작게 움찔, 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곁에 선 모모만이 살짝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아주 미약한 동요였고, 다음 순간 유키는 다시 자연스럽게 모모와 호흡을 맞춰나갔다.
스테이지라는 공간은 겉보기에는 넓어 보여도, 실은 아주 좁고 예민한 곳이었다. 특히나 Re:vale처럼, 단 두 사람이 서로의 움직임에 맞추어 무대를 꾸려나가야 하는 유닛이라면 더욱 그랬다. 곡이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수록, 모모는 유키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트너의 춤선이나 음색이 주는 미세한 이질감에도 저도 모르게 동요해버리는, 모모의 몸선이나 목소리를 낱낱이 분석해가며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곱씹다 보면 그런 것도 같았다. 해명할 수 없는, 단 1프레임의 위화감 같은 것들을 모모는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유키의 움직임이 더욱 완성도가 높을지도 몰랐다.
첫 찰나의 동요 이후로, 유키는 아무 실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키를 지나치게 신경 쓰던 모모가 그 뒤로 이따금 안무를 틀리고는 했다. 두 번, 세 번을 맞춰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유키는 잘 해냈다. 유키는……, 완벽했다.

「거의 도착했어」 08:58

읽음 08:58 「응! 천천히 와」

모모는 그저 알고 싶었다. 지금의 유키가 이전의 유키가 아니라면……. 첫눈에 자신을 사로잡고, 좌절했던 순간에 자신의 설득으로 마음을 새롭게 먹고, 수년간 자신의 곁에서 Re:vale를 이끌어 온 ‘진짜 유키’는, 어떻게 되어 버린 건지.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모모는 그의 행방을 찾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아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분명 모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돕는 것이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다. 모모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모모 자신의 망상이라면. 아니, 애초에 망상이 아니더라도 Re:vale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모모는 반리에게서 그 사명을 이어받아 멤버로 합류한 존재였다. 유키가 없는 Re:vale는, 그리고 유키가 없는 모모는……, 존속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감쪽같은 대체재는 없는 것보다야 있는 편이 나았다. 만약 그가 정말로 완벽한 ‘유키’가 될 수 있는 존재라면……. 최소한, 자신이 아는 ‘유키’로 그를 대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모모.”
연습실 문이 열렸다. 유키는 양손에 음료잔을 들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청포도 에이드 한 잔. 낯익은 카페 브랜드의 낯익은 음료였다.
“음료수 사 왔어.”
유키는 에이드를 모모에게 내밀었다. 모모는 은은한 초록빛을 띤 음료잔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왜 그래? 어서 받아. 귀에 익은 목소리에 모모는 희미하게 웃으며 잔을 받았다. 손바닥에 달라붙는 차가운 감촉에 팔이 옅게 떨렸다.
“고마워…….”
이런 유키를, 어떻게 멀리할 수 있겠는가.


. . .



눈이 그치고, 날씨가 따스해지자 나무에는 싹이 텄다. Re:vale의 공백기는 신년 이후로 약 한두 달 정도였고, 공백기에도 크고 작은 행사 무대에 서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유키와 모모의 무대는 모로 봐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되려 더욱 완벽해진 유키의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유키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광경을, 모모는 한 발짝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도 웃으며 손 키스를 날려 주고는 했다.
봄과 함께 Re:vale의 신곡이 찾아왔다. 유키가 고전하던 음원이 드디어 가사를 갖추고, 완결된 형태로 다듬어진 것이다. 신문 기사가 쏟아졌고, 모두가 두 사람의 컴백 무대를 주목했다. 모모는 유키와 호흡을 맞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유키가 자신에게 맞추는 만큼, 자신도 유키에게 맞춰 움직이고 노래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신곡을 선보이는 첫날이 왔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안무를 틀리거나, 음정을 삐끗하는 실수 하나조차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내듯, 유키와 페이스를 맞추어 마지막 합창 가사를 노래한 모모는 기쁨으로 물든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역시 유키는 굉장해.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대가 끝이 났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마지막을 장식하는 쾌활한 엔딩 음악. 반짝이며 흩날리는 콘페티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손을 맞잡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두 사람.
“전부 네 덕분이야, 모모.”
“뭘 그래, 유키.”
모모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유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잿빛 홍채가 서서히 저에게로 움직였다. 시선이 한 데 얽히자 모모는 마침내 깨달았다. 제 곁에 선 사람은……,
“…유키의 곡은 언제나 세계 제일인걸.”
…이젠 완전히 유키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