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느낀 결정적인 신호는, 침묵이었다. M은 언제부턴가 S의 앞에서 입을 잘 열지 않게 되었다. 특별히 찝찝한 구석이 있어서 말을 아낀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니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S는 그 침묵으로부터 먼지 쌓인 피로감을 느꼈다. 가끔가다 M이 토해내는 목소리 사이사이에서 묵직하게 묻어나는 탈력감에, S는 종종 케케묵은 먼지를 내쫓듯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가족이 못살게 굴었거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겠거니 생각했다.
S는 깊게 캐묻는 대신, M을 평소처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항상 하던 대로 문자를 주고받고, 간혹 만나서 항상 가던 음식점에 가고. 간혹 이야기의 흐름이 끊겼다가도 억지스레 이어지곤 하는 잡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흘렀다. 층층이 쌓인 먼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서서히 좀먹었다.
그냥……,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 대꾸하며 고개를 숙이는 M의 목소리는 바싹 마른 한겨울의 나뭇가지처럼 건조했다. ‘잘 모르겠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그래서 가장 무심하게 들리는 문장. 그게, 마포 뒷골목의 어느 술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 새벽을 지새우던 S가, 요즘 자신의 음악은 어떠냐며 넌지시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M은 여섯 번째 맥주잔을 천천히 들이켰다. 클럽에서나 틀어줄 법한 경박한 음악이 술집에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낮은 비트가 음산하게 귓바퀴를 때려 댔다. 이 썩을 플레이리스트, 최근에 들은 것 중에서 제일 최악인데. 소리 내 투덜거려도 M은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때에 찾아오는 M의 무응답은 대개 S의 의견에 대한 반대를 뜻했지만, 그 순간은 조금 달랐다. S는 M의 음악 호불호를 잘 알았다. 그는 아주 확고했고, 그런 취향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체를 테이블에 기대어 엎드릴 뿐 답은 없었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얼굴에 녹색으로 빛나는 술집 조명이 흩뿌려졌다. M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젠 대답하는 것조차 지겹다.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님 취했어, 그만 좀 마시고 들어가지. 휴대전화를 꺼내 콜택시 번호를 누르는 S의 손동작은 어딘가 느리고 굼떴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한 곡의 노래와도 같은 이 관계의 중심에서 자신과 화음을 이루어야 할 M의 목소리가, 좀처럼 터져 나와 주지 않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무음(無音)은 곧 불협화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고꾸라지듯 엎드린 M의 옷깃을 움켜쥐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하지만 S는 그러지 않았다. 명료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S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막차가 끊긴 시간이었다. 불길한 위화감을 뒤로하고, 우선 M을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 결론짓자 여덟 자리의 숫자가 액정화면 위에 나열되어 있었다.
전화를 걸자 곧 수화기 너머로부터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분 내로 그리 가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기자, S는 겉옷을 챙겨서 먼저 나가 버렸다. S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벌써 가느냐고, 한마디쯤은 해줄 줄 알았다. 그런 건 없었다.
자리를 뜬 것은 S였지만, 결국 떠난 것은 M이었다.
그 뒤로 서로 연락을 하는 일은 없었다. 단골 술집이나 음식점에서도, 심지어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콘서트에서도 M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S는 M의 SNS 계정을 검색했지만 찾아낼 수 없었다. 검색 엔진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던 그의 수많은 S 관련 게시물들도, 장마가 한바탕 휩쓸고 간 것처럼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쯤에서 S는 관계의 연장을 포기했다. 휴대전화를 벽에 집어 던진 S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친하지 않은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M과는 친구, 지인, 관계자, 연인, 보호자……,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어딘가 미적지근한 사이였다. 그런 만큼 유일하기도 했다. 그리 꽉 묶여 있지도 않아서 헐겁기만 한 끈을, 굳이 끊어내고 도망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을까. S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S는 그간 지나쳐 온 무수히 많은 관계들을, 유리창에 덧그려내듯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것들의 면상 하나하나에 돌을 던지고 싶었다. 무엇 하나 단아하게 포장해낼 수 없는 인연들이니 당연했다. S가 회상을 거듭하며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슬러 올라올수록, 뇌내의 유리창이 하나씩 요란하게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M이 있었다.
S는 고요를 원했다. M에 대한 기억마저, 돌을 던져서 악랄하게 재단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S는, 머릿속으로 돌을 던지는 짓을 그만두었다.
M의 모습은 아직 조각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대신 M은 자신의 목에 걸어두었던 펜던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금은 그저, 일생을 믿어 온 신앙에 기대고 싶었다. 위태롭게 일렁이는 심리가 잠잠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