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들시티에 아이가 태어났대.”
소식이 귀에 닿았을 때, 티모는 또래 친구 몇 명과 놀이터에서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흠집이 난 나뭇가지를 내려놓은 티모는 뛰었다. 삶도 시간도 느긋하게 흘러가는 밴들시티에서, 막 태어난 아이를 만나볼 기회는 어린 티모에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러므로 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남자아이일까? 아니면, 여자아이? 눈은 어떤 색일까. 나를 좋아해 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곧 한 집 앞이었다.
평소라면 한산해야 할 누군가의 집이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티모는 인파를 헤치고 안쪽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입구에 멈추어 서서, 조용히 두어 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젖히면……,
“티모 왔구나.”
아이의 어머니가 침대에 누운 채 그를 맞이했다.
아주머니의 품속에는 천에 곱게 싸인 갓난아이가 있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티모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축하드립니다, 아주머니. 찾아와줘서 고맙구나. 따스한 인사말 몇 마디가 오고 가다 보면 티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로 옮겨 갔다.
“이 아이는 이름이 뭐예요?”
“람다라고 한단다.”
람다, 람다……. 되새기듯 그 이름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 있자니 람다가 뒤척였다. 조막만 한 손을 티모에게 뻗을락 말락 하면서 옹알거리는 것이, 호명을 알아듣는 것 같기도 했다.
“한번 안아보겠니?”
아주머니의 권유에 티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를 제 양손으로 직접 안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조그만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묵직했다. 람다를 조심조심 받아 들은 티모는 휘청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느라 한참을 끙끙거렸다.
“아이고, 조심하렴.”
“아, 네!”
가까스로 아이를 받치고 선 티모는 그제야 람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람다는 잿빛 털과 포실포실한 귀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부드러운 흰 천에 묻어나는 따스한 체온이나, 감은 눈에 가늘게 뻗은 속눈썹을 톡, 건드리면 꼼지락거리는 모습,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눈에 띄게 오르내리는 몸뚱어리 같은 것들……. 자신보다도 조그만 이 아이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자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티모는 어린아이에 대해 잘 몰랐다. 아기는 어떻게 해 주어야 기뻐할까. 고민하던 티모는 람다를 다정하게 감싸 안고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람다는 꺄르륵 웃는가 싶더니 곧 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새근거리기 시작했다. 잠이 든 듯했다.
“람다는 네 품속이 편안한가 봐.”
아주머니의 말에 티모는 빙그레 웃었다. 천 포대기를 아주머니에게 돌려드리면서도, 좀처럼 람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티모는 잠자는 람다의 귀에 속삭였다.
“잘 자, 람다.”
집을 나오면서, 티모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 작고 어린 요들을, 이런 존재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고.
Ⅱ
성장
“으아아앙!”
밴들시티 입구에서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밴들시티의 어린 요들, 람다는 울보 소녀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달려와서 달래주어도,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옷을 내밀어도 람다는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서러운 마음은 그런 것들의 결핍으로부터 오는 감정이 아니었다. …티모. 람다는 히끅거리며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문제는 그쪽에 있었다.
티모는 아이 티를 벗을 무렵에 정찰대를 세웠다. 마을 근방을 정찰하며 위험한 것들로부터 요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티모의 신념이었다. 또래의 소년들은 물론이고, 세대가 다른 이들 중에서도 그와 뜻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자가 몇 있었다. 밴들시티의 정찰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티모가 있었다.
밴들시티는 자기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의젓하게 소리치는 티모는, 어린 람다의 눈에는 무척 든든하게 보였다. 솔선수범해서 마을을 위해 일하려 하는 티모의 모습은 자신을 아껴 주는 오빠처럼 보이기도, 모두를 돕고자 하는 건실한 버팀목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람다는 티모를 응원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그랬던 람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정찰’이라고 이름 붙인 행동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였다.
람다는 자라며 어른들에게 밴들시티 바깥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해 듣게 되었다. 마냥 평화롭게만 보였던 세상은 그리 너그러운 곳이 아니었다. 요들의 울타리 너머에는 관용과 양보만으로는 넘어가 주지 않는 존재들이 잔뜩 있었다. 정찰대원들은 간혹 다쳐서 돌아왔다. 대개는 손끝이 조금 긁히거나 발목이 접질리는 정도였지만, 람다의 걱정은 서서히 커져 갔다.
정찰대는 밴들시티 밖에서 미지의 존재를 잔뜩 만난다. 지금까지는 무탈했지만, 언젠가 요들의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아주 크고 무서운 것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래서, 티모가 다른 대원들을 감싸고 혼자 크게 다쳐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티모를 절대 보낼 수 없어. 람다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앳된 소녀로서는 씩씩한 정찰대장을 가로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른들은 티모의 행동을 칭찬했고, 아이들은 멋진 칭호를 달고 중요한 일을 맡아 떠나는 그를 우러러보기까지 했다. 어느새 람다는 티모의 출격을 원치 않는 유일한 이가 되어 있었다.
람다는 무력했다.
“흑, 으흑……, 티모! …으아아앙!”
그저 울며불며 떼를 쓸 수밖에는.
“울지 마, 람다!”
람다가 목놓아 울 때마다 티모는 쩔쩔매며 뛰어와서 그녀를 위로했다. 지금도 그랬다. 숲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참에, 배웅을 나온 무리 뒤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티모는 타인을, 특히 람다 같은 아이만큼은 자기 탓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티모가 밴들시티의 누군가를 울린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람다의 경우만 제외하고.
“아이쿠, 벌써 엄청 울어버렸네.”
티모는 허둥지둥 제 옷 주머니를 뒤집어 보았다. 바지부터 시작해서 겉옷, 가방, 머리에 얹은 모자 속까지……. 분명 어딘가에 휴대용 손수건을 찔러넣어 두었건만, 숲 바깥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티모는 무엇이 어디에 들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것은 나침반이나 수첩, 붕대 같은 정찰용 물품들뿐이었다.
람다는 티모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이대로는 목소리가 쉴 때까지 울어댈 것만 같았다.
“아이, 참……. 이걸 어쩐담.”
결국 손수건을 포기한 티모는 손등으로 람다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부드럽게 꾹꾹 찍어 누르는 자리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울고 있었을까. 짐작하다 보면 자연히 달래는 말이 흘러나왔다.
“너무 울지 마, 람다.”
“티모…….”
람다는 눈가가 그렁그렁한 채로 티모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달래주어 겨우 멎은 눈물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다시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티모는 람다가 눈물을 보이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정찰을 떠날 때면 울기 시작했다가, 돌아오면 훌쩍거리며 겨우 멈추고는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 자신이 람다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뚝 해, 뚝.”
활짝 벌린 티모의 양팔이 람다를 끌어안았다.
“이건 ‘다녀왔습니다’ 포옹이야.”
“‘다녀왔습니다’ 포옹…?”
되물은 람다는 조용히 티모의 품에 몸을 기댄 채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티모의 체온은, 그녀의 마음을 어딘가 안심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히끅거리는 애달픈 목소리는 티모의 품속에서 서서히 잦아들었다. 울보 소녀의 호흡이 마침내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자, 티모는 웃으며 그녀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 잘했어. 그리 격려하는 듯이.
“다녀올 때마다 이렇게 해 줄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줘.”
Ⅲ
사고
귀가하면 꼭 람다에게 ‘다녀왔습니다’ 포옹을 해 준다.
그러니 람다는 울지 않고 티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건 티모가 제안한 작은 규칙이었다. 람다는 티모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저녁에는 티모에게 포옹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을 명분으로 티모가 무사해 주기만 한다면……. 바깥으로의 외출은 여전히 람다에게는 두렵고 불안한 일이었지만, 울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마음을 굳게 먹고 참았다.
그렇게, 두 마리의 요들은 한 발짝 더 성장했다. 마을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을 여럿 해결한 티모는 이제 밴들시티의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티모를 존경했고, 람다는 그런 티모를 곁에서 지켜보며 매일 저녁 그의 귀환을 기다렸다. 기다림, 흠모, 호감……. 한 꺼풀 한 꺼풀 겹쳐지다 보면 티모를 향한 감정은 금세 무거워져 있었다. …티모가 좋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티모가……, 많이 다쳤대.”
그러던 어느 날, 람다의 어머니는 무거운 목소리로 딸에게 비보를 전했다.
“병원에서 긴급 헌혈자를 찾고 있었어. 듣자 하니……, 머리도 많이 다쳤나 봐.”
평소에도 티모는 사소한 상처 정도는 달고 살았다. 어깨나 등에 작은 생채기를 달고 밴들숲으로 돌아오면, 마을의 요들들은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약간의 잔소리를 했다. 몸을 아끼라든가, 한창때 청년이라도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든가. 그러고는 금방 느긋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배웅하기를 반복했다. 마을의 청년들도 그 정도로는 종종 다치고는 했고, 적당한 처치를 해 주면 금방 나았다. 하물며 티모는 실력 있는 정찰대장이었으니, 요들들은 그를 믿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람다는 병원 앞에 모인 요들들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소곤거리는 것을 엿들었다. 요들을 싫어하는 종족에게 당했대. 요들 하나가 배신을 해서 기습했대. 커다란 괴수가 덮쳐 왔대……. 요들이 중상을 입는 일은 몹시 드물었기에 여러 소문이 도는 모양이었다. 람다로서는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사고의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티모가 크게 다쳤다는 것, 오로지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람다는 티모를 원망했다. 그러게 정찰대 같은 위험하기만 한 일, 진작 그만둬버렸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동시에 자책도 멈출 수 없었다. 왜 진작 더 떼를 써서라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 하고.
온갖 생각에 잠겨서 한참을 제 방 안에서 서성이던 람다는, 해 질 녘이 되어서야 티모의 병문안을 겨우 결심할 수 있었다. 마을의 영웅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몰려들었던 요들들의 행렬도 이제는 많이 줄어 있었다. 람다는 침울하게 무언가 중얼거리는 이들을 빠른 걸음으로 헤치고 들어가서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티, 티모……?”
병실에는 티모가 혼자 누워 있었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만큼 붕대로 두껍게 칭칭 감은 채였지만 낯에 고통의 기색은 옅었다. 색색 숨을 쉬는 모습도 그럭저럭 평온해 보였다. 보아하니 이제 막 급한 처치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푹 쉬게 두면 나을 텐데, 다들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이었던 걸까. 의아해하면서도 람다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기척을 느꼈는지, 티모의 굳게 닫혀 있던 눈이 움찔거리며 천천히 뜨이고 있었다.
“괜찮아, 티모? 많이 다쳤……,”
살짝 말을 꺼내려던 람다의 말문이 막혔다. 티모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찰나였지만, 람다는 그 낯빛에서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냈다. 티모는 지금까지 람다의 앞에서, 나아가 밴들시티의 모두에게 보여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타지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이나 지을 법한, 당혹감과 의아함이 섞인 듯한 얼굴…….
람다는 자신의 직감이 틀렸기를 바랐다. 차라리 우악스레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말하지 마, 지금 너무 다쳤어. 깨끗하게 나으면 분명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티모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 혹시…….”
“…….”
“…나를, 알아?”
. . .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공격당한 티모는 중상을 입고 기억을 잃었다.
티모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태였으므로, 사건은 완전히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대장이 혼자 따로 떨어져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기에, 티모를 부축해서 돌아온 정찰대원들도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티모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그의 정찰 일정은 잠정 연기되었다. 람다는 충격 속에서도 티모를 극진히 간호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먼저 그가 어서 건강해져서 평소의 씩씩한 모습을 되찾아주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였다. 람다는 붕대가 피로 축축해지면 새것으로 갈아주고, 갈증을 느낄 때면 물을 건네주며 밤에도 그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근심으로 가라앉은 병실에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람다의 간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티모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지만, 이제 침대에 등을 기댄 채로 람다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람다는 그에게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요들이라는 점, 요들을 지키고 싶어서 밴들시티의 정찰대장이 되었다는 점, 언제나 요들들에게 헌신적이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좋은 존재라는 점……. 자신이 기억하는 티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이렇게 자세히 말해주면 떠올려주지 않으려나. 람다는 내심 기대했지만 티모는 끝까지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람다의 말을 경청했다. 아, …돌아오지 않겠구나.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자라나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에는 온 머리를 묵직하게 짓눌러올 때쯤에야 람다는 말을 마무리 짓고 티모를 바라보았다. 티모는 진지한 눈으로 람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이해했어.”
“…응.”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고마워.”
그리 말하며 티모는 람다를 힘껏 껴안았다.
“티모…?”
팔을 활짝 벌려서 자신을 끌어안아 주는, 부드럽고 따스한 포옹. …람다는 당혹감 어린 눈으로 티모를 힐끔 쳐다보았다. ‘다녀왔습니다’ 포옹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어쩐지 부끄러워서 털어놓지 않았다. 분명 티모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 텐데, 처음 보는 소녀를 이다지도 다정하게 안아줄 수가 있는 걸까.
“기억에는 없지만,”
티모의 목소리가 람다의 귓가에서 울렸다.
“…왠지 안아줘야만 할 것 같았어.”
왠지, 안아줘야만 할 것 같았다. 티모의 말에 람다는 잠시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늘어놓은 이야깃거리들이 티모의 다친 머리 한구석을 자극했을까? …아니, 아마 아니었을 테다. 그래도 조금은 어루만져 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목소리와, 몸짓, 그리고 거기서 묻어나는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의 추억을 기억하는 포옹이, 이 체온 속에 은은하게 녹아 있다고…….
“으흑, 흑……. 티모…….”
그리 생각하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크게 다친 티모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람다의 뺨을 타고 흘렀다.
“울지 마,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다.”
티모가 멋쩍게 웃으며 람다의 등을 토닥여 주면 울음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으흑, …으아아앙!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티모는 허둥거리며 울보 소녀를 달랬다.
“이, 이제 멀쩡하다니까!”
“뭐가 멀쩡해! 흑, 히끅…….”
‘다녀왔습니다’ 포옹을 해 주기 전의 티모는 람다를 잘 위로해주지 못했다. 람다가 엉엉 울고 있으면, 말로 잘 해결해보려다가도 그녀가 들어주지 않으면 엉뚱한 짓으로 관심을 쏠리게 만들려 하다가 일을 더욱 그르쳐버리고는 했다.
기억을 잃은 지금, 티모는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더 토닥여줘도 울음을 멈출 것 같지는 않고, 다 나았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고……. 쩔쩔매다가 람다를 놓아 준 티모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침대에 양손을 짚고 자세를 잡았다.
“진짜야, 람다. 봐, 이제 이렇게 앞구르기도 할 수 있고……,”
티모는 구겨진 이불 위로 날쌔게 한 바퀴를 굴렀다. 람다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아직 상처가 나으려면 멀었는데, 너무 많이 움직이면 안 좋을 것 같은데……. 말할까 말까 고민하며 걱정스럽게 티모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람다의 속도 모르고 다시 구를 준비를 했다.
“…이렇게 뒷구르기로 돌아오기!”
그때, 뒤쪽으로 몸을 날린 티모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잠깐, 어어…….”
기우뚱거리던 몸체는 침대 한쪽에 걸터앉은 람다에게로 자연히 굴러갔다. 피할 새도 없이 제게 정면으로 굴러들어오는 티모를 맞닥뜨린 람다는 비명을 지르며 티모의 둔부를 찰싹 때렸다.
“꺄아아악!”
“우와아아아아!”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둘은 큼지막한 병원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Ⅳ
오해
티모는 금방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정찰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요들들은 그를 걱정하면서도 역시 자신들이 아는 티모가 맞다며 기뻐했다.
복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원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티모를 너그럽게 맞이해주며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알려주었으며, 눈치 빠른 재봉사들은 티모의 대원복을 새로 만들어서 건네주었다. 사용해왔던 장비들은 손에 몇 번 쥐어 보기만 해도 그럭저럭 사용법을 깨우칠 수 있었다.
티모는 정찰대원으로서의 삶에 금방 적응해나갔다. 첫 며칠간은 헤매기도 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숙련된 대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선전했다. 밴들시티의 분위기도 그제야 활기를 띠었다.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정찰대가 돌아왔어!”
“티모다! 티모가 왔어!”
그날도 어김없이, 정찰대의 귀환 소식으로 마을이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주민들은 정찰대를 반갑게 맞이했고, 티모는 다가오는 이들 하나하나에게 악수와 포옹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들 덕분에 오늘도 밴들시티는 평화로워. 당치도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할 뿐인걸요. 덕담이 오고 가면 주변에는 온통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람다는 그 무리에 섞여들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람다는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티모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몰려든 인파 끄트머리에 서서 그가 모두에게 칭송받는 광경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최근에 많이 피곤한가. 단순히 그렇게 생각한 티모는 람다에게 다가갔다.
“람다, 잘 있었지?”
“으응, 뭐…….”
활기차게 말을 걸어도, 또 이렇게 시큰둥한 반응이다. 티모는 조금 울적해져서 람다의 낯을 살폈다. 특별히 피곤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즉, 지금 이 반응은 순전히 람다가 그러고 싶어서 보이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티모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에 빠졌다. 기억을 잃은 뒤부터 보아 온 기간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람다는 언제나 자신을 맞이하러 가장 먼저 찾아와주는 이들 중 하나였다. 최근에 자신이 람다가 서운해할 만한 행동을 했나? 그렇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항상 하던 대로 모두를 대했고, 람다를 대할 때에도 자신의 태도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람다와는 ‘다녀왔습니다’ 포옹이라고 이름 붙인, 조금 더 세심한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아. 바로 그 ‘다녀왔습니다’ 포옹이 문제였던 게 아닐까. 티모가 고뇌 끝에 도출한 결론은 그랬다. 그러고 보면 람다는 몇 주 전에 성년을 맞이한 참이었다. 이 시기의 숙녀에게는 다소 거북한 스킨십이었거나, 단순히 아이 취급이 싫었거나, 어쩌면 아직도 그녀를 그렇게 대하는 자신과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일지도……. 그리 생각하면, 최근 그녀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고 낯을 가리는 듯이 굴었던 일련의 행동들도 말이 되었다.
포옹 같은 건 굳이 해 주지 않아도 울지 않을 나이이기는 하지. 어떻게 생각하면 람다도 조금 더 성숙해진 것이니, 오히려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었다. 스스로 꺼내 놓은 논리에 납득한 티모는 편안히 잠이 들었다.
그래서, 그 뒤로 티모는 람다를 안아주지 않게 되었다.
이제 심란한 감정은 전부 람다의 몫이었다.
람다는 티모와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티모의 복귀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뻐했다. 어떻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탈 없이 잘 나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티모에게는 조금 속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나 크게 다쳐서 기억까지 몽땅 잃어 놓고, 백지의 상태가 되어서도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정찰대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 티모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동시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티모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람다도, 정찰대원들도, 심지어는 티모 본인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행운이 따라줘서 그 정도 피해로 그친 거라면?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의식의 흐름이 불길한 쪽으로 기울면 람다는 언제나 불안해졌다.
티모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요들을 지키기 위해 줄곧 최전선을 지켜 왔다. 정찰대원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모두를 지휘하는 대장이 된다는 것은 위험을 가장 먼저 떠맡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그건 언제나 티모의 몫이었고, 람다에게는 이 상황이 다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서 티모가 그 자리에 올랐다면, 반대로 생각하자면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일 터였다.
람다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버려서, 타지를 누비고 돌아오는 티모를 밝은 얼굴로 맞이하지 못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 언제나처럼 웃으며 달려가야 티모도 웃으며 저에게 두 팔을 벌려 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티모가 자신에게 항상 해 주었던 ‘다녀왔습니다’ 포옹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물며 다른 요들들과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스럼없이 손을 잡거나 안아주고는 하면서, 자신에게만 특별 대우라니.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티모의 행동을 곱씹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가까워 왔다. 람다는 축 늘어진 채로 집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를 빠져나와서, 오솔길을 지나고,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 두 요들의 실루엣이 람다의 시야 한구석을 스쳤다. …티모와 또래의 남자 하나가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까 엄마가 커다란 솥에 버섯 수프를 끓여놓은 거 있지!”
“진짜? 고생하셨겠네.”
람다는 저도 모르게 나무 뒤에 숨어서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남자는 한껏 들떠 있었고, 티모의 목소리도 꽤나 밝았다.
“티모……, 엄청나게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 하고 있어.”
“그런가? 하하, 마침 식사할 때가 다 돼서 출출해졌나…….”
“오래간만에 먹으러 올래? 티모라면 분명 환영해주실 거야!”
남자는 티모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티모도 그에 응하듯 어깨동무를 했다.
“갑자기 찾아가도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내일 또 정찰 나가야 하잖아. 든든하게 먹고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더니 둘은 천천히 주택가로 걸어갔다. 여동생은 잘 지내? 그래, 하루가 다르게 큰다니까. 가서 한 번 안아 봐. 가벼운 잡담과 웃음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동안에도 람다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티모는 모두를 친근하게 대했다. 단 한 사람, 람다만이 이제는 예외였다. 그 흔한 포옹 한 번 안 해 주게 되지 않았는가…….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내가 제일 먼저 의지했는데.
누구보다도 티모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 왔던 건 처음부터 나였는데!
람다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혹시라도 티모와 마주치게 될까 봐, 광장을 끼고 멀리 돌아서 뛰는 동안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자꾸만 방울져 떨어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좋아하지 말 걸 그랬어. 속으로 되뇌며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는 모습은, 마치 티모를 향한 마음을 닦아내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 .
“…아주머니, 람다는 어디 있어요?”
다음날 오후, 새벽같이 떠났던 여정으로부터 돌아온 티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최근 람다의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 자리에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람다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제 저녁부터 방에 틀어박혀서는 나오지를 않아.”
“라, 람다가요?”
“지금도 같이 마중 나가자고 했는데, 대답도 안 해줘서 혼자 왔단다…….”
“그런가요, 큰일이네요…….”
티모는 아주머니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우울해 보였을 뿐,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끔 노크를 해 봐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든가, 그래서 살며시 문에 귀를 대어 보니 훌쩍이며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든가…….
티모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 길로 람다의 집으로 향했다. 요들을 지킨다는 자신의 신념은 분명 위험한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는 일차원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그들을 눈물짓게 만드는 사소한 문제들까지도 전부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다는 뜻까지도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냥, 티모는 람다가 슬프지 않았으면 했다.
“…실례합니다!”
부러 크게 소리치며 현관으로 들어와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집은 텅 빈 것처럼 보였지만, 유독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기에, 람다가 틀어박혀 있다. 예감한 티모는 방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람다, 무슨 일 있어?”
“…….”
“얘기 들었어. 혹시 어디 아파?”
정적이 이어졌다. 나무로 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닿을 수 없는 이 애매한 거리감에서 티모는 람다가 울타리를 치듯 둘러놓은 여러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다. 경계심, 망설임, ‘당장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티모는 잠시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은 무슨 말을 꺼내도 대꾸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침묵은 일단 람다가 문을 열고 나와서 자신과 얼굴을 마주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였고, 자신도 강제로 이 문을 열 생각은 없었다.
“…람다랑 대화를 좀 하고 싶어. 괜찮다면 생각 있을 때 잠시 집 밖으로 나와 줘.”
티모가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은 간단했다. 람다가 나와 줄 때까지 자신이 침착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 얘기하기 싫으면 아주머니께 그렇게 나한테 전달해달라고 해 줘! 급하게 덧붙인 티모는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도로 걸어 나왔다. 람다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 . .
람다는 한참이 지나서야 방을 나섰다. 어제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오늘은 아침부터 쭉 먹은 것이 없었다. 오래 잔 것을 고려해도, 깨어 있을 때마다 종종 목놓아 울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거실에 놓인 빵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람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해가 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온통 칠흑처럼 새까만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빛나는 행성이 잔뜩 떠오르는 시기였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행성들이 발하는 빛이 어지럽게 풀어져 있는 모습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람다의 기분은 밤하늘을 닮아 엉망이었다. 낮에는 울다 지쳐서 잠들어 있었을 때, 티모의 목소리가 람다를 깨웠었다. 대화를 하고 싶으니 밖으로 나와 달라고 했었던가……. 무시하고 다시 잠들어 버렸으니 분명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을 것이다. 차라리 그때 문을 열어 주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겠지. 오늘은 퇴짜까지 맞혀 버렸으니 더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희미하게 흩어져서 은은히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자면 곁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람다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람다.”
…티모였다.
“티, 티, 티모!? 여기서 뭐해?”
“기다리고 있었어.”
“이, 이 시간까지? 여기서, 계속…?”
아니, 언제부터…? 중얼거리던 람다는 입을 다물었다. 기척을 지우고 숨는 것은 티모의 주특기였다. 자신이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말을 걸었다는 것은, 즉……, 자신을 찾아왔을 적부터 지금까지 쭉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린 거야!”
“그게……,”
“대, 대답도 안 했는데. 십 분 정도 안 오면 이야기하기 싫은가보다, 하고 돌아가는 게 맞잖아!”
날 선 말을 한바탕 쏟아놓은 람다는 씩씩거리며 티모를 올려다보았다. 세상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기다리겠는가. 그냥 눈치가 없는 바보거나, 그만큼 자신과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무식한 바보거나…….
“그냥, 최근에 람다랑 단둘이 얘기 나눈 적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람다가 흘겨보아도 쩔쩔매며 대답하는 티모는 곤란한 듯이 웃기만 했다. 그런 티모의 모습에는 악감정이나 싫증 같은 것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얼굴만 들여다봐도 그 정도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말없이 티모와 한참을 눈을 마주치고만 있었던 람다는 문득, 지금껏 티모를 원망했던 자신이 한없이 볼품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순진하게 웃으며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을 잠시나마 미워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티모의 웃음에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람다는 새삼스레 진실을 상기했다. 나는 이 웃음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구나…….
“…으아아앙!”
그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다가오던 티모는, 람다가 울음을 터뜨리자 흠칫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안아주려던 듯한 손동작이 잠시 엉거주춤하게 허공을 맴돌다가, 손 하나를 좀 더 위로 뻗어 람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람다는 울음을 애써 삼켜내며 꾸역꾸역 물었다.
“…왜 안아주지 않는 거야?”
“어…?”
“달래주려는, 거잖아. 안아주려다 말 것까진……, 흑, 히끅……. …없잖아…….”
“그야 네가 안아주는 걸 싫어하니까……,”
티모의 말에 람다의 낯이 굳어졌다. 안아주는 게 싫어졌다고?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었다.
“…안 싫은데.”
“응?”
람다가 억세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이번에는 티모가 놀란 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거짓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애초에 티모는 그럴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다녀왔습니다’ 포옹을, 자신이 이제 더는 원하지 않는 것으로 티모가 생각해 버렸다. 람다는 비로소 티모가 자신과 거리를 두려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커다란 오해였다.
람다는 자신의 목소리가 진정되도록 숨을 골랐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준비가 되었을 때, 공들여 고른 진심 어린 문장을 천천히 입 밖으로 꺼냈다.
“있잖아, 티모.”
“응, …람다.”
“나는……, 티모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티모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게 정말 싫어.”
정찰대원으로 사는 삶이 위험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돌아온 그 날의 일만 없었더라도, 람다가 정찰이라는 사명에 이렇게까지 애증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였다.
티모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이 없었다. 마치 람다가 털어놓은 짧은 문장 두 개를 뇌리에 새기려는 듯이, 오래도록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막바지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작지만 또렷했다.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던 거구나, 람다.”
고마워. 티모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난 밴들시티를 지키고 싶어.”
평생 요들에게 헌신하겠다고 다짐했거든. 덧붙인 티모는 람다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티모를 올려다보는 람다와, 람다를 내려다보는 티모. 줄곧 어긋나기만 하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침내 맞닿았다.
티모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람다, 네가 바로 그 밴들시티의 요들이잖아.”
멍하니 티모를 바라보던 람다는 문득, 눈시울에 눈물이 다시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목이 막히고, 숨은 텁텁해져 오고, 어깨는 떨리고…….
흑, 티모……, 으아앙, 으흑……. 으아아앙—! 한 데에 꿉꿉하게 뭉쳐 있던 울분을 터뜨리듯 람다가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하자, 티모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오해는 전부 풀렸다. 이제 티모는 울보 요들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위험하게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요즘에는 매번 탈 없이 돌아오고 있잖아?”
“…저번에도 병원 갔잖아.”
“그, 그건 작은 상처였는걸.”
연고 바르니까 나았어, 진짜로. 대꾸한 티모는 확신시키려는 듯이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앞으로도 계속, 무사히 돌아올 거야. 돌아올 때마다 이렇게 안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응?”
걱정하지 마. 티모가 연신 그리 말하며 확신시켜 주자, 커다랗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어 갔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 불규칙한 딸꾹질 소리, 차츰 진정되어 가는 숨소리……. 그 호흡이 작게 코를 고는 소리로 바뀌어 갈 때까지 티모는 람다를 끌어안은 채로 집 앞에 기대어 서 있었다.
금방도 잠드네……. 고개를 저으며 웃은 티모는 람다를 안아 들어 그녀의 방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 주었다.
티모는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람다의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새근거리는 람다의 얼굴은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어쩐지 티모의 기억에도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낯이었다.
“…잘 자, 람다.”
속삭이는 티모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가뿐하고 밝았다.
Ⅴ
그리고, 현재
“어서 오세요…!”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람다는 리본 세공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형형색색의 실을 엮어서 끈을 만들고, 매듭을 짓고, 다양한 형태의 리본을 만들어 진열장에 단정하게 전시해 놓는 모습은 그녀가 어엿한 밴들시티의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해주었다.
티모는 람다의 가게를 찾았다. 오전 아홉 시 반, 출발을 앞둔 시간이었고, 잠시 가게에 들러서 인사를 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가게 입구에 우뚝 선 티모는 부지런히 일하는 람다의 모습을 눈웃음을 한껏 머금은 채 바라보았다. 포옹해주지 않으면 곧잘 울어버리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대견하게 철이 들었다니……. 괜히 뭉클해진 가슴에 손을 얹고 있자면 곧 람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이런 시간에 여기는 웬일이냐는 듯이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티모, 주문 안 할 거면 가보는 게 어때…….”
“어? 어어, 어, 아니야! 주문하러 온 거 맞아.”
앗, 들켰다. 티모는 허둥지둥 손을 뻗어 벽에 가지런히 놓인 진열장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 만들어 줘.”
“…정말?”
“응, 정찰 나갈 때 하고 갈게.”
되묻는 람다에게 티모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다면야, 뭐……. 알았어. 수긍한 람다는 금방 리본을 자르고, 묶고, 재단해서 티모의 모자 위에 꼼꼼하게 둘러 주었다.
티모는 밝게 웃으며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에도 포옹해주러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으응…….”
그리 말하고는 가게 밖으로 나선 티모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자, 람다는 계산대 앞에 서서 그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해주었다.
포옹을 약속하는 티모의 마지막 한마디에 람다의 뺨이 조금 붉게 물든 것은, 그에게는 영원히 비밀이었다.
. . .
“저기 봐, 티모가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달았어!”
“티모 님, 리본을 단 모습도 멋있다…….”
그날, 정찰대가 길을 떠나는 풍경에는 유난히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여럿 있었다. 티모가 커다란 리본을 달고 자리에 나타난 것이었다.
자기 머리만 한 크기로 큼지막하지만 수수하게 묶인, 새빨갛고 단순한 디자인의 리본이었다. 람다네 가게 거네. 람다한테 부탁했나 봐. 여기저기서 화기애애하게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람다는 붉게 상기된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렇게 동네방네 알려지는 건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람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 틈새로 티모를 훔쳐보았다. 마을 입구로 향하는 티모는, 자신이 만들어준 빨간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람다는 모두를 등지고 서서 남몰래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티모가 웃으며 정찰을 나가서, 웃으며 돌아올 수 있는 날들이 계속되기를.